PARK : 거리 두기의 시대, 공○의 시대 : 우리가 공원에 가게 되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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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는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 곳곳의 다중이용시설 운영이 멈추자 수많은 사람이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결국, 바깥 통행을 통제하게 되는 나라도 생겨났으며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여러 나라의 공원이 폐쇄된 상태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공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을 갖춘 최초의 공원은 동물을 울타리 안에 가두어 사람이 사냥하기 위한 모습으로 존재했다고 합니다. 현대의 공원은 철저한 계획 아래에 구성되어 자연에 가깝기보다는 가까이할 수 없기에 안전한 거리에서 대리만족하고자 조성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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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 주변에서 뜨겁게 떠올랐던 하나의 공원이 있는데 바로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튜브 <SBS KPOP CLASSIC> 채널입니다. 이곳에서는 과거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케이팝 차트를 통해 인기 있었던 히트곡들이 24시간 스트리밍 됩니다. 이 채널의 별명은 밀레니얼 세대를 누렸던 30·40이 낮 기간 온라인에 접속하게 되면서, 실제 노년층이 많이 모이는 장소인 탑골공원을 비유하며 생겨난 말입니다. 뉴트로 열풍에 맞춰 30·40세대는 추억을 소비하기 위해 접속하지만, 그 시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10·20세대는 조금은 다른 이유에서 접속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요즘 세상이 세기말보다 더 세기말처럼 느껴져서 인지 이러한 유행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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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는 ‘공원’에 대한 말을 하려는데 자꾸 공원을 넘어선 것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원을 그리지만, 공원을 그리는 게 목적이 아닌 준화 작가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을 흔하게 자연풍경으로 배치해 두는 도시인의 심정은 대자연을 그리워하지만 당장 갈 수 없기에 대체할 수 있는 공원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준화 작가의 전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그림은 공원 속에서 봤을 법한 장면들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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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화
은주: 잘 지내냐는 말보다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야 할
(시국인) 것 같네요.
준화: 코로나의 여파로 겪는 불편하고 슬픈 일들은 차치하고⋯. 최근 로즈마리를 심었는데 싹이 나서 잘 자라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실내 식물 키우는 거에 별로 자신이 없었는데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거기서 나 말고 살아있는 무언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죽이지 않고 잘 길러보려고요. 은주 씨는 어떻게 지내나요?
은주: 저는 최근에 갓이 머스타드 란 걸 알게 됐어요.
준화: 헐
은주: 좀 더 자세히 말해보면 저는 프랑스에서 지내는 중인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하던 일들이 올스탑 되어버려서⋯ 어찌어찌 임시로 지내는 곳에서 실험적으로 갓을 심어 봤어요. 갓의 씨앗이 차후에 머스타드=겨자가 되는 거더라고요. 바깥에도 심고 안에도 심었는데 역시 바깥에 있는 아이들이 괴물처럼 빨리 자라는군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양배추, 케일, 콜리플라워, 브로콜리가 야생 겨자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준화: 몰랐어요. 갓이라면
갓김치만 담아 먹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놀라운 족보가 있었군요.
은주: 그나저나 평론가도 아닌 저를 섭외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처음 글 요청을 받았을 때 단박에 예스를 하긴 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까 조금 어색했어요. 그래서 구구절절한 작품 평론 글 같은 거보단, 나도 한 명의 관객이자, 동료의 마음으로 같이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어요.
준화: 은주를 섭외한 이유는 내 그림을 아주 오랜 시간 봐온 사람이기 때문이죠. 10년 넘게 우리는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왔어요. 보통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잡담을 하는데 그렇게 대화하는 와중에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은주는 평론가는 아니지만 내 기준으로는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렇게 공유해 온 시간을 배경으로 내 그림을 어떻게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요청하게 되었죠.
은주: 기대라니⋯ 갑자기 어깨가 뭉치는 것 같네요. 들썩들썩⋯ 그나저나 ‘여행’, ‘공원’.. 준화는 참 서정적이지만 유행을 타지
않는 주제를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 같아요. 많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갖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때 준화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그 행위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공원을 그리고 있지만, 공원 자체를 표현하고자 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그런가요?
준화: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떤 걸 그리고 싶은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 쉽지않지만
멈출 수 없는 여정⋯ 그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농담이고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건 제 눈으로 새로운 걸 보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새롭다는 게 최초의 절대적 새로움을 말한다기보다는 저 스스로가 기준이 되어 계속 갱신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긴 시간 동안 풀 수 있는 조금 재미있는 숙제? 아직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는 미결감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어찌 됐건 일단은 계속 그린다는 계획 아닌 계획이 있는데 지속하기 위해서
제가 가장 즐길 수 있는 주제와 방식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공원은
자연이 있고 앉을 곳이 있고 누구나 이용 할 수 있는데 돈을 안 내도 된다는 점이 최고죠. 저는 공원이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공원 자체에 관한 이야기 라기보단 저를 포함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모습에 대해 그려보고 싶었어요.
공원에 앉아 있으면 좋긴 한데 뭔가 모를 아쉬움 같은 게 들었어요. 공원은 자연이
아니라 가끔은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다채롭고 안전하게 꾸며놓은 공간 이잖아요. 공원에 앉아서 역시 자연이 좋아~하지만 자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게
재미있어요.
매일 타는 지하철이지만 강을 지나가면
절로 고개를 들게 되는, 질리도록 봐왔던 한강 다리이지만
불이 켜지면 자연스레 또 사진을 찍는 도시인들처럼. 좋긴 한데 뭔가 아쉬운, 아쉽지만 이거면 됐지 뭐 하는 그런 거요.
은주: 저도 가끔 그림을 그리고 있긴 한데,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워요. 예로, 그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아이가 미술학원에 와서 대충 그리다 말았는데 의외로 너무 훌륭한 거. 오히려 그림이라는 건 너무 애써서 그렸을 때 망쳐버리게 되는 운명 같은 게 있나 봐요. 준화도
작가로서 이런 딜레마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각자 원하는 선과
면의 모습 이라던가 목표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있나요?
준화: 저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림이 좋아요.
선이나 색이 간결하고 솔직한 그림이요.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낙서는 잉여적인 활동 이잖아요. 무언가를 향한 목적의식이 뚜렷하거나 바쁠 때는 낙서를 안 해요. 아무 생각이 없을 때 가장
낙서가 잘 되잖아요. 그리고자 하는게 명확할 수 록 제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낙서하면서 나온 이미지들을 그림에 가져와 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런 방법이 편해지고 결국 작품 제작에 필요한 과정으로
굳어지게 됐어요. 낙서는 목표라기보다는 찾아내는 방법이더라고요.
은주: 그렇죠. 낙서란 건 애초에 쓸데없는 행위 같은 거라, 애초에 낙서에 대한 쓸모를 구상하며 낙서를 하진 않잖아요.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 행위를 하면서
자유롭고 우연적인 부분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그림을 종이나 캔버스 같은
곳보다 아이패드에다 쓱쓱 그리면 수정도 쉽고 왜인지 죄책감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더라고요.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좀 더 가볍게 느껴지고 자유로움도 가질 수 있고요. 준화는 어떤가요?
준화: 종이 드로잉을 할 때 처음 그린 것 위에 덧그리면서 그중 제일 맘에 드는 선을 찾아내요. 사실 디지털 툴로 드로잉을 할 때도 종이에 그리는 방식이랑 크게 다르진 않아요.
선을 지우는 게 귀찮아서 그냥 덧 그려버리거든요. 빨리빨리 그리는 게 맘에 드는
선을 찾아내는데 더 용이 하기도 하고요.
은주: 일전에 준화의 작업실에 들렸던 적이 있는데 평소에 사진으로만 보내준 그림을 봤을 때랑 작업실에서 직접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낌이 참 다르더라고요. 보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잖아요. 화면을 통해서는 볼 수 없었던 질료의 느낌들, 그림이
장악하는 캔버스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역시 유리된 화면에서의 접근과 실제의 느낌에는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준화: 캔버스를 캔버스처럼만 다루기보단 좀 더 가볍게,
종이와 비슷한 질감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 천과 미디엄으로
실험을 해요.
은주: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캔버스에 그린다는 감각을 스스로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좀 더 궁금해지네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끔 그림이 캔버스에 진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준화: 종이에 그린 그림을 캔버스에 옮길 때는 종이에서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해요. 드로잉 할 때는 앞서 얘기했듯이 낙서처럼 하니까 그리려고 하는 이미지가 정해지고 나면 어떤
순서로 캔버스에 그릴지 다시 차근차근 생각하는 편이에요. 순서를 잘 짜 놓으면 캔버스에 실수할 확률이 줄어들더라고요.
캔버스를 대할 때도 처음 가졌던 그 호흡 그대로 가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새 캔버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망설여지기도 하는데 그걸 타파하는 쾌감이
있어요. 그런 것이 제가 그림에서 즐기는 부분이에요.
은주: 그건 그렇고, 최근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와 의무의 행위,
윤리적인 행동지침까지 되었잖아요. 그런데 ‘언택트 Untact’라는 말이 신조어로 떠오르는 만큼 ‘거리 두기’는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기후변화, 미세먼지, 미디어의 발달 등 각종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그 어느 때 보다 우리는 자연과 더 멀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동물들도 우리에 가둬져
있으면 본능이라는 게 억압되기 마련이긴 하지만 이게 완전히 지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해소되지 않는 욕구처럼.
준화도 이러한 욕구가 있나요?
준화: 애초부터 도시가 좋아서 도시에 살기를 선택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기서 태어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오다 보니 벗어나기 어려워진 거죠. 그러므로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 자연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오히려 자연에 가깝게 사는 사람들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을 갈망하는 더 강한 충동
같은 게 있지 않나요. 도시가 주는 피로함이 표출되는 것처럼요.
은주: 'Park' 시리즈 안에서 나무를 그린 작품들을 보면 마치 꿈에서 본 것만 같은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대자연을 꿈꾸지만,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인상이 강하게 표현된 것 같아요.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면 자연이 아닐까 싶네요.
준화: 저는 산에 올라가는 걸 좋아하지만 너무 높은 곳은 무섭더라고요. 룰루랄라 신나게 등산을 하다가 덜컥 여긴 어디지? 무서워!
하게 되는 감각이 아마 대자연을 만나게 될 때 드는 감각이지 않을까 싶어요. 즐거워할
수 있는 딱 거기 까지의 자연, 친숙하고 안일한 어찌 보면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인 모습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웅장한 실제 자연물보다는 내 머릿속의 인상들이 소재가 되었어요.
은주: 준화와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가까이할 수 없는 대상을 기억을 통해 다시 그림으로 선명하게 재생해보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림(공원)을 보게
될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네요. 전시를 보러 올 관람객들이 준화의 작업에 접속하기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말들이 있을까요?
준화: 조금이나마 편히 앉아서 그림을 감상하시라고 벤치를 준비했어요. 잘 쉬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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