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는 ‘나에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시작으로 작가는 주변의 사물부터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 관찰 속에서 포착하게 되는 사물들의 리듬감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손가락이나 붓을 이용한 터치는 그 리듬감을 순간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터치 또한 빠르고 자유롭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려진 터치들은 나름대로의 리듬을 형성하며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관찰하고 담으려 한 것임으로 이것은 '속도'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작가는 물체의 시간에 따른 움직임, 즉 속도를 포착하며 그것들을 드로잉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이 관점에서 작업들을 본다면,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멈추지 않는 대상을 포착하는 데에 왜 윤곽과 선을 분명하게 나타내는가? 따라서 , 물체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작업들을 통해 작가 스스로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에 나타난 작가의 세계에는 ‘속도’, 즉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 움직임들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며, 바로 이 점을 작가가 주목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작가는 살아있는 것, 생명력이 있는 것을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작가는 이 움직임들을 어떤 방법으로 프레임화 시킬지 드로잉을 시도한다. 이 시도들은 세계에 대한 공부로 보이며, 제목에서 또한 <Study>라고 말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작가의 공부는 물체의 속도나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주목해 볼 만한 그림이 있다. <X,Y> 라는 그림이다. 길쭉한 양말 이미지는 직물의 짜임을 나타내는 무늬와 회색빛의 색을 띠고 있고, 그 밑으로 노란색이 비춰진다. 그런데 양말의 모양이 이상하다. ‘양말’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앞코가 동그란 양말이 아니라 발가락의 모양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회색의 밑으로 비치는 노란색은 양말의 실체인 ‘발’일 것이다. 이와 같이 발의 모양에 따라 변하는 양말의 속성은 곧 발의 움직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물체의 속성을 소재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 그동안의 작업들과 다른 경향을 보인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작업들을 보면 대상의 움직임을 특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의 개인적인 감각으로 포착하고 프레임화 시켰다면, 이 작업은 대상의 보편적인 사실 자체를 작가의 프레임 속으로 가지고 왔다는 것 이다. 개인마다 경험의 차이가 있는 소재가 아닌 모두가 경험한 사물의 속성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의 ‘감각’에 의존한 물체의 순간성을 포착했던 작업들의 경향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사물의 속도감에서 포착할 수 있는 ‘순간성’에서 왜 변함없는 사물의 ‘속성’에 집중하게 되었을까, 제목의 의미 또한 궁금하다.
3. <Filleting>이라는 작업에는 뼈를 발라내는 장면을 12컷으로 담아내고 있다. 만화적인 컷을 사용함으로서 시간의 흐름, 순서에 따라 손질되어가는 생선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물체의 움직임에 따라 외관이 바뀌는 장면을 그린 작업이 있다. <Peeling a sausage>라는 소시지의 껍질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외관이 변하는 소시지의 모양들을 포착한 작업이다. 이 작업은 만화의 컷과 달리 물체의 움직임들을 한 화면에 가득 담았다. 이 두 작업은 시간, 속도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작업은 움직임을 만화 컷으로 12장면 프레임을 나누어 나타냈고, 후자의 작업은 물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한 화면에 모아서 나타냈다. 그렇다면, 왜 전자에 작업은 프레임을 나누어 나타냈고 후자의 작업은 한 프레임으로 나타냈는가?
4. 최근의 작업들 중, <Taping>이란 제목의 흰색 테이프를 감은 인체의 그림들이 있다.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테이프는 근육 속을 팽팽하게 당기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도 2.에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속성’에 집중한 맥락으로 보인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근육의 ‘움직임’, 근육의 ‘운동’도 느껴지고 있다. 이는 그림에서 아크릴 물감이 엷게 여러 번 겹쳐진 기법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작가는 색의 겸침 기법을 통해 밑의 색들이 희미하게 올라와 보이면서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거나 엷지만 다리에 꽉 채워진 색들로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근육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은 테이핑의 표현방법으로 그것의 속성과 움직임을 포착함으로써 1.에서 언급했던 대상의 ‘움직임’, ‘속도’라는 맥락과 2.의 물체의 ‘속성’이라는 맥락이 겹쳐지는 작품이라 판단된다. 그래서 이 작업은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있어 두 맥락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테이핑을 레이어의 겹침을 통해 표현한 것은 촉각을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겹침의 기법이 그 감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탁월하다고 생각된다.